다반사 茶飯事

차를 마시는 것은 밥을 먹는 일만큼이나 예사롭고 흔한 일이다. 다반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첫 번째

봄, 매화를 만나다

계절은 봄을 향해 가고 있지만 겨울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기찻길 옆 오두막(원행 스님 표현) 광제사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산 중턱에는 아직 곳곳에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봄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시기라도 하듯...... 차를 마시며 세상살이의 깊이를 배우고, 차를 나누며 소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시간, 우리의 첫 차 자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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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차는 기다림이다

오직 앞만 보며 달려가는 일상에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내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 또는 그 무엇에 의해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위로를 건네곤 한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우리에게 삶이란 끊임없이 돌아가는 다람쥐 쳇바퀴일 때가 많다. 그렇게 매일 매일 숨이 턱까지 차 오를 정도로 돌고 돌고 또 돈다. 어느 순간 돌지 않고 멈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곳을 향해 무조건 뛰어가기보다 조금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잠시 방향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라도 엎어져 쉬어 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쉬어감⌟을 위해 두 번째 차 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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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은 없다

아침을 깨우는 자명종 시계소리, 자동차에 경적소리, 컴퓨터 키보드 소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일상속에서 수많은 소음과 마주한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너무나 많은 소리들이 뒤섞이다 보니 세상이 시끌벅적한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쩌다 가끔 소음이 차단된 곳에 가면 그 고요함을 즐기고 편안함을 느끼기보다 어색하고 불편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관봉 선생의 초대로 찾아간 경기도 어느 산자락은 복잡한 세상살이와는 인연을 끊은 듯 평화롭고 아늑했다. 어머니 품과 같이 기분 좋은 상쾌함이 밀려드는 곳...... 그곳 산자락에서 우리는 세 번째 차 자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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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수여산 복여해 (壽如山 福如海)

어느새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름 더위가 찾아노는 바람에 차 자리로 향하는 옷차림이 훨씬 가벼워졌다. 이번에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다도의 ⌜다⌟자도 모르던 필자가 점점 차 맛이 그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가운 변화였다.
차 자리는 계절이나 그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에 의해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의 크고 작은 행사나 일상에 변화가 생겼을 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아프면 쾌차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차 자리를 갖기도 하고, 지인이 이사하거나 집을 지었을 때는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며 함께 차를 마신다. 우리의 네번째 차 자리가 그러했다. 원행 스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는 조 선생 부부가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것을 축하하고, 더불어 부부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함께 했다. 사실 조 선생 부부와 원행 스님의 인연은 조 선생의 남편인 한 선생이 먼저였다고 한다. 하지만 차 자리를 함께 할 때마다 본 조 선생의 열정으로 말한다면 원행 스님과 조 선생이 조금 더 가깝게 보였다. 그 이유는 스님의 움직임에 한발 앞서 척척 보조를 맞추는 것은 조 선생을 따라갈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차 자리에서도 원행 스님과 조 선생은 언제나 그랬듯이 최고의 호흡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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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도심에서 자연을 느끼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조금은 낮선 곳이었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관봉 선생과 필자, 사진작가에게 그곳은 별천지였다. 입구부터 은은하게 풍겨 오는 커피와 차향이며, 예 양반 가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실내 분위기에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다섯 번째 차 자리는 청주 산남동에 자리 잡고 있는 찻집, 백비헌(白沸軒)에서 이루어졌다. 원행 스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차인(茶人) 중 한 분이 운영하는 곳으로 차인들 사이에서는 사랑방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고 한다. 그곳에 한 걸음 발을 들여놓자 아무도 모르는 비밀 정원을 발견한 것처럼 꼭꼭 숨어 있던 명소를 발굴한 듯 성취감, 흐믓함, 뿌듯함 같은 것들이 몰려왔다. 그곳은 낯설지만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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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다연 (茶緣)

원행 스님과 차 자리를 갖다 보면 자주 설곡(雪谷)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화가(書畫家)이며 차인인 설곡 스님은 원행 스님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계신다. 그래서 원행 스님이 차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설곡 스님이 자주 등장한다. 설곡 스님의 곁을 지키며 함께하는 시간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함께 차인의 길을 걸어가는 분들 가운데 원행 스님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설곡 스님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 본다.
우리는 여섯 번째 차 자리를 위해 설곡 스님이 계신 청주 내원사(內院寺)를 찾았다. 한 여름 무더위가 위세를 떨치는 길이었지만 수고로움 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설곡 스님을 통해 마주하는 차의 세계는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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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다네

첫 번째 차 자리를 가졌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겨울의 끝자락부터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어느새 봄과 여름을 거쳐 이제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광제사의 하늘과 땅에는 가을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무성하던 초목들은 서서히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연못의 연잎은 초록을 잃고 찬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오직 여기저기 피어 있는 국화들만이 찬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랗고 붉은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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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차 그리고 향을 음미하다

⌜투다도(鬪茶圖)⌟에는 송나라 때 성행했던 차와 관련된 다양한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 있다. 삼삼오오 모여 차를 음미하고 차 맛을 품평하는 모습이 참으로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치 그림 속에 들어가 그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여덟 번째 차 자리에서 우리는 중국 남송 시대에 인물화와 산수화로 이름을 떨쳤던 유송년(劉松年)의 그림을 청나라 때 남명(南溴) 정치원(程致遠)이라는 사람이 모사(做방)한 투다도를 만났다. 한 걸음 뒤에서 투다도를 감상하고 있자니 그림 속에 등장하는 옛 사람들의 모습 위로 현재 우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사진과 이야기로 엮어 가고 있는 열두 번의 만남이 언젠가는 21세기의 투다도와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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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동지섣달 꽃 본 듯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시작한 우리의 차 자리는 새로운 겨울을 맞이했다. 절기상으로는 동지가 지나면 봄이라지만 우리의 계절은 한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홉 번째 차 자리에 원행 스님은 향로만 준비하고 향은 피우지 않았다. 차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매화 분재의 은은한 향기를 즐기라는 의미로...... 지금이야 온실에서 사시사철 온갖 꽃이 쏟아져 나오지만 옛날에는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동지섣달에 꽃을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오죽하면 ⌜동지 섣달 꽃 본듯이 날 좀 보소⌟라는 노랫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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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다

새해 첫 차 자리. 원행 스님의 차실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스님은 신년 차 자리의 구색을 다 갖추게 되었다며 내리는 눈을 반가워했다. 눈과 함께 오신 손님도 계셨다. 원행 스님과는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분들이다. 열 번째 차 자리가 예사롭지 않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해가 바뀌면 좋은 날을 잡아 화로에 숯불을 피워 차회를 가진다고 한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인만큼 평소보다 더 고심해서 날짜를 정하고, 인연이 깊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가장 좋은 날, 가장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가장 좋은 다리를 꺼내 놓는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차 자리, 모든 사람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한다. 스님의 차실에도 한 해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처용 탈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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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차의 정수를 맛보다

차 자리를 시작한 후 두 번째 봄을 맞이했다. 처음 차 자리를 가졌을 때 느꼈던 어색함은 사라지고 서로 안부를 물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사이 우리의 모습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했다. 어색하고 긴장되었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차와 다기를 대할 때마다 조심스러웠던 손길은 익숙해졌다. 특별하게만 느껴졌던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차 자리를 시작하며 우리는 책 제목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의견을 주고받았다. 몇몇의 의견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원행 스님이 제안한 ⌜다반사⌟로 의견이 모아졌다. 차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특별하게만 받아들이기 보다는 편안한 일상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스님의 바람이 담겼다. 그 사이 차를 대하는 우리(필자와 사진작가)의 태도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낮설고 어설픔에서 편안하고 익숙함으로의 변화. 물론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차를 기다리는 마음은 처음처럼 설레었다. 그래서 우리의 차 자리는 언제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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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고완(古玩)의 아취(雅趣)

한 달에 한 번, 열두 번의 만남을 약속하며 시작했던 차 자리였다. 사전에 차 자리의 방향과 성격을 정하기 위해 두번의 모임이 있었다. 원행 스님과 관봉 선생 부부, 그리고 한 선생 부부가 모였다. 이후 필자와 사진작가가 합류해 일 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함께 차를 마시고, 고완을 감상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번 차 자리는 열두 번의 만남을 마무리 짓는 동시에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자리이다.
원행 스님은 ⌜차 자리에는 아취가 있어야 된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돈과 권력에 얽매여 영혼 없이 사는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스님의 차 자리에서는 골동품을 쉽게 보거나 만지게 된다. 박물관 진열장 속에 있어야 될 것 같은 것들이 차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인다. ⌜모든 기물은 목적에 맞게 사용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그래서 아무리 오래되고 귀한것들이라도 무심하게 쓴다. 옆에서 잘못해서 깨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지만 귀함을 아는 만큼 조심해서 사용하면 된다며 거리낌 없이 옛것들을 사용한다. 단순히 옛것을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옛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골동 애호가가 아닐까.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즐길 줄 알면 그 사람이 고수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 나는 내 일을 즐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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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기념

책 다반사 출간을 기념하며

한달에 한번 열두번의 찻자리를 정리하고 기록한 결과물의 이름을 "다반사" (차마시고 밥 먹는 일 - 특별할것 없는 일상적인)로 붙였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 읽어보면 특별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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